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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신화 브랜드뉴 뽀글머리 댄서의 제 2의 인생 근황 ㄷㄷㄷ

by 뱀선생 2020.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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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높은 춤 때문에 견제당하긴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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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걸 다 털어버릴 것 같은 춤사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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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던, 일명 '인순이 언니'

 

 

 

 




 

한국인 최초로 디올 오트쿠튀르 패턴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2008년 디올의 어시스턴트 모델리스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어요. 폴 카(Paule Ka)와 프랑크 소르비에(Frank Sorbier)의 오트쿠튀르를 거치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고요. 2010년에 셀린느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2년에 파코 라반이 오트쿠튀르를 재론칭할 때 패턴실 실장으로 스카우트됐죠. 이후에는 카타르 왕비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드가 론칭한 카타르 럭셔리 그룹 소속 패션 브랜드 QELA에 몸담기도 했어요. 이처럼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니 다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디올로 돌아왔네요. 

패턴 디자이너라는 독특한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제가 패턴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대학 시절에는 춤에 흠뻑 빠져 있었거든요. 래퍼 윤희중 씨의 추천으로 ‘철이와 미애’의 미애 씨를 알게 되었고, 그녀가 만든 안무팀 ‘스위치’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했어요. DJ DOC의 ‘런투유’ 활동 때, 싸이 ‘챔피언’ 때 백댄서로 참여했었죠. 제법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예상치 못하게 발목 부상을 당했어요. 더 이상 춤을 출 수가 없게 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죠. 다른 길을 찾으려고 고심하다가 떠올린 게 디자인이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이브 생 로랑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거든요. 

춤에서 디자인으로, 방향 전환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시에는 대안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할 만큼 용감했던 것 같네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미 대학을 졸업할 나이였고,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불문학을 전공했으니 그거 하나 믿고 파리행 티켓을 끊었죠. 그게 2005년의 일이었어요.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파리에 적응하던 시기에 패턴 디자이너 양성 학교인 AICP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재단사 출신인 라데베즈가 1837년에 설립한, 유서 깊은 학교거든요. 무작정 지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입학 허가를 받았죠. 

 

 

전문기사는 여기 -> https://woman.donga.com/3/all/12/1970521/1

 

 

출처 :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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