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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 피파

케빈 더브라이너 덕배 다큐멘터리 급 레전드 인생사 인터뷰

by 뱀선생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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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더브라이너 덕배 다큐멘터리 급 레전드 인생사 인터뷰

내용이 스압이지만 끝까지 쭉 읽어내릴정도로 좋았음 ㅋ

근데 진짜 월클 천재이긴 한건가 무리뉴, 과르디올라를 모두 만난 덕배 클라스~

다음 시즌 다시 건강한 볼빨간 덕배 모드를 봤으면 좋겠음.


Let Me Talk
BY KEVIN DE BRUYNE

 

난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맨시티에 오기 전에는, 라힘 스털링이라는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어요. 만난 적도 없고, 제가 영국 언론을 통해 들은 바로는 그 친구가 매우 특이하다고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글쎄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정말로. 그런데 타블로이드지에선 그가 거만하다고 주장했죠. 그래서 저는 그를..음 영국인들은 그런 사람을 뭐라하죠?


아마, ’개XX’가 맞는 단어겠네요ㅋㅋ



라힘과 저는 아주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면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시티에 이적했고 언론은 우리 둘을 가혹하게 대했거든요. 저는 “첼시에서 짤린 놈”이었고 라힘은 돈을 위해 리버풀을 배신한 놈이라 비난받았죠. 언론은 우리가 특이한 캐릭터라고 말했어요. 



물론,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면 저는 “내가? 내가 특이하다고? 당신들은 날 알지도 못 하잖아!” 이렇게 반응하죠.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 대한 기사를 읽는 건, 그 선수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할 수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시티에 와서 정식으로 라힘을 만나게됐죠. 훈련이 끝나고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저는, “뭐야 이 사람 왜이렇게 멋있어? 언론은 대체 무슨 얘길 한 거지?” 이랬죠ㅋㅋ


솔직히, 전 가까운 친구가 많이 없어요. 축구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까지는 정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라힘과는 정말 가까워졌죠. 우리 아들들이 태어난 시기도 비슷하고, 걔들은 맨날 같이 노니까ㅋㅋ전 정말로 라힘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됐고 그가 얼마나 진정성있고 똑똑한 사람인지 알아요. 그런 점에선 타블로이드지들이 맞아요. 그는 정말 스페셜하니까. 



이게 진실이에요. 라힘은 제가 축구계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선하고 겸손한 사람 중 하나에요. 


어쨋든, 하루는 라힘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얘가 그러는 거에요. “친구, 처음 널 만나기 전에 너가 정말 어려운 캐릭터인줄 알았어. 너가 사람들과 정말 거리를 많이두고 부끄러움이 많은 줄 알았지. 근데 너 꽤 웃김ㅋㅋ”


전 “내 유머는 딱딱한 게 포인트임ㅎ”


걔는 “딱딱 좋지~ㅋㅋ”

라힘은 저한테 물었죠 “난 어떤 줄 알았어?”


“솔직하게? 난 너가 진짜 거만충인줄 알았지ㅋㅋ”


걔가 절 쳐다보면서 “야!”


저도 보고 “뭐? 너도 내가 이상한 놈인줄 알았다며ㅋㅋ”

훌륭한 교훈이에요. 제 경험상 축구선수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라요. 특히나 제대로 알게됐을 때는 더. 

이건 저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라힘이 제가 까다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유를 알아요. 제가 16살 때부터 저를 따라다닌 먹구름이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하지만 이해해주세요. 제가 제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니까요. 축구? 축구에 대해서라면 하루종일도 얘기할 수 있지만 제 개인적인 모습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어려워해요. 


그냥 전 이런 사람이에요. 확신하건데, 이걸 읽는 사람들 중 몇몇은 공감하겠죠.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저는 극도로 조용하고 극도로 부끄러움이 많았어요. 플레이스테이션도 없었고, 친한 친구들도 별로 없었죠. 제가 제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은 축구였어요. 그리고 전 축구를 매우 잘 했죠ㅋㅋ축구장 밖에선 전 매우 내성적이었어요. 말 한 마디 없었죠. 축구장 안에선 완전 불이 붙었죠. 제가 다비드 실바에게 “LET ME TALK” 이라 소리치는 영상 다들 보셨을 거에요. 그런데 그건 제 어렸을 때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죠. 




누구나 어렸을 땐...글쎄,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걸 모르잖아요. 전 이 사실을 어렵게 배웠어요. 



제가 14살일 때 전 제 인생을 바꿀 결정을 내렸죠. 겡크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할 기회가 있었고 저 혼자 벨기에의 반대편까지 이주했어요. 집에서 두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지만, 부모님께 가고싶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고향에서도 소심쟁이였다는 겁니다. 겡크에선, 저는 웃긴 사투리를 쓰는 전학생이었죠. 참 외로웠어요. 전 사회생활을 배우지도 못했어요. 쉬는 날은 일요일 뿐인데, 일요일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봤으니까요. 아카데미에서의 2년은 제 인생에서 다시 없을 가장 외로운 시기였을 겁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왜 14살 밖에 안 됐으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축구를 할 땐 모든 게 잊혀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떤 문제든, 기분이 어떻든 축구만 하면 다 사라졌어요. 축구만 할 수 있다면 모든 게 좋았습니다. 그걸 집착이라 부른다면, 어쩌면 집착일 수도 있겠네요. 

간단히 말해, 축구는 제 인생입니다. 


아카데미에서 첫 해는 기숙사에서 보냈어요. 그곳엔 침대랑 책상, 싱크대가 있는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죠. 다음 해엔, 양육가정으로 들어갔어요. 클럽이 어린 선수들을 위해 구한 곳이죠. 저를 비롯해 다른 두 선수가 같은 양육가정에 배정됐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저는 그 때에도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 해에 전 학교생활도 잘 했고 축구도 잘했어요. 싸움 같은 것도 없었고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여름방학 전에 전 짐을 싸고 양육가정에게 인사했죠. 


그들은 “그래, 방학 끝나고 보자! 여름 잘 보내렴”


그런데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는데 어머니가 울고 계신 겁니다. 전 누가 죽었나 생각했어요. 


“무슨 일 있나요?”


그리고 어머니는 제 인생을 바꾸게 되는 말씀을 하셨죠. 


“양육가정이 돌아오지 말라고 하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양육가정에서 너가 안 돌아왔으면 한대”



“뭐라고요? 왜요?”



“네 그 자체 때문에. (because of who you are) 너가 너무 조용해서 너랑 교감할 수가 없단다. 너가 어려웠대”



전 정말 크게 충격받았어요. 개인적인 원한으로 느껴질 정도였죠. 양육가정은 저에게 어떤 말도 한 적이 없어요. 절대 어떤 문제도 없었죠. 전 그저 제 방에 혼자 있었을 뿐이에요. 전 누구도 귀찮게 한 적이 없고 그들은 저에게 다시 보자며 손까지 흔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클럽에게 저를 받아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니요. 



제 경력에 있어 이건 큰 문제였습니다. 왜냐면 전 뭐 빅스타도 아니었고, 이제 클럽은 제가 문제아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클럽은 제 부모님에게 다른 양육가정을 알아봐줄 순 없다고 했고 저는 다른 기숙사에서 지냈어야 했죠. 괜찮은 곳이 아니였어요. 그저 문제아 수용소였을 뿐. 



전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던 걸 기억해요. 그 때 축구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제가 어렸을 적에 공을 차던 담장으로 향했죠. 



말 한 마디가 저에게 깊게 각인됐습니다. 


“네 그 자체 때문에”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몇 시간 동안이나 담장을 향해 공을 차댔어요. 그리고나서 아주 크게 소리지른 게 기억 나요. “다 괜찮아질 거야. 두 달 안에 1군에 들어갈 거야. 무조건, 실패자로서 집에 돌아오진 않아. 무조건”



여름 방학 이후 겡크로 돌아갔어요. 2군으로 막 올라왔을 때입니다. 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죠. 그러나 훈련은 후..몸 속이 활활 불 타는 느낌이었어요. 미친 듯이 했죠. 



전 모든 게 변했던 그 순간이 기억나요. 금요일 밤 경기였는데 벤치에서 시작했어요. 후반 교체 투입돼서 그냥 미친 폼을 보여줬죠. 



한 골



너가 안 돌아왔으면 한다는구나


두 골


너가 너무 조용하대



세 골


네가 너무 어렵대



네 골



너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한다는구나



다섯 골



네 그 자체 때문에



전 후반전에만 5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고나니까,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전 두 달도 안 되어 1군으로 승격했고, 제가 다짐한 것 보다 며칠은 빨랐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클럽은 이제서야 양육가정비를 대주겠다고 했죠. 



참 웃겨요, 축구를 잘 할 때 사람들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 말이에요. 



어느날 절 버린 양육가정이 클럽에 찾아와서 모든 게 오해였다고 하더군요. “우린 너가 돌아오길 바랬어! 주중에는 기숙사에 있고 주말에는 우리 집에 있기를 바랬다고! 주말엔 우리 집에서 지내도 돼!”



지금와서 보면, 그냥 웃긴 상황일 뿐이죠. 하지만 그 때엔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상처가 컸기 때문이에요. 전 “아니, 날 쓰레기통에 버려놓고 내가 잘 하니까 다시 꺼내보고 싶다고?”라고 했어요. 



지금와서 보면, 그냥 고맙다고 했어야 됐어요. 그 경험은 제 경력에게 아주 큰 동력이 됐으니까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이야기는 저를 내내 따라다니며 괴롭혔죠. 겡크에 있을 때도, 첼시로 이적할 때에도 벨기에 언론들은 제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그 양육가정 이야기를 팔아댔습니다.  



제가 흥분하는 성격인 것은 맞습니다. 특히 축구장 위에서라면 더더욱. 잘 참아내다가 뻥 하고 정신머리를 잃습니다. 보통은 5초 정도 지나면 괜찮아져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축구를 하며 배운 모든 것들은 딱 하나로 정의될 수 있어요-전 축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첼시에 있을 때, 언론은 저와 무리뉴 사이의 관계를 집중조명했죠. 하지만 진실은 저와 그는 딱 두 번 밖에 이야기를 안 해봤다는 거에요. 전 첼시에 와서 임대를 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죠. 그래서 2012년에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이적했고 그 시즌은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다음 여름에 첼시로 돌아왔을 땐 몇몇의 독일 클럽들이 저와 계약하고 싶어했습니다. 클롭의 도르트문트가 그 중 하나였고, 전 그들의 플레이스타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쩌면 첼시가 절 보내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리뉴가 문자를 보내더군요. “넌 남는다. 너가 이 팀의 일부가 됐으면 해”



그래서 저는 ‘오 좋아. 내가 그의 계획에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프리시즌에 합류했을 때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전 시즌의 4 경기 중 두 경기를 선발출전했고 전 나름 괜찮게 했다고 봐요. 뛰어나진 않았지만 꽤 좋았습니다. 첫 네 경기가 끝나자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전 벤치로 내려갔고 어떤 기회도 받지 못 했어요. 설명도 없었죠. 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밀려났어요. 



그리고 물론, 제 실수도 있었죠. 프리미어리그 선수로서 자기를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안일했던 것 같아요. 팬들이 잘 모르는 건, 눈 밖에 나버리기 시작하면 훈련에서도 전혀 주목받지 못 하게 된다는 거에요. 어떤 클럽에선, 아예 존재하지 않는 느낌마저 받게되죠. 



만약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 혼자서도 열심히 훈련할 수 있고 제 자신을 관리할줄 아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21세엔 그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 합니다. 컵경기에서 스윈던 타운을 상대로 기회를 받았을 즈음엔, 이미 몸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서 첼시에선 완전히 끝났죠. 



조세가 12월 즈음에 절 사무실로 부르더군요. 아마 이게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순간일 거에요. 그의 앞에는 서류가 있었고 그는 제게 말했죠. 

“어시스트 하나, 골은 없고 볼 탈취만 열 개”


그의 의중을 알기까지 한 일 분은 걸렸을 겁니다. 


그리고는 다른 공격수들의 스탯을 읽어내려가더군요. 


뭐 5 골, 10 어시스트 이런 식으로. 


조세는 제가 무슨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눈치였고 전 결국 입을 열었어요. “하지만..이 선수들은 15-20경기를 치뤘어요. 전 3 경기만을 뛰었고요. 다른 상황 아닐까요?”



정말 이상했죠. 저희는 또다시 임대이적에 대해 얘기했고, 마타도 그 시기에 눈 밖에 났을 때였습니다. “그래, 마타가 떠나면 6옵션이 아닌 5옵션은 될 거다”



전 완전히 솔직하게 말했죠. “제가 느끼기엔 클럽이 절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전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5옵션 말고, 저를 판매해주세요”


조세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어요. 하지만 그도 알 겁니다. 저는 정말 축구경기가 필요했어요. 결국 첼시가 절 판매했고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첼시는 절 데려왔을 때보다 두 배 넘는 가격에 절 팔았고, 전 볼프스부르크에서 더 나은 환경을 얻었으니까요.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축구 때문은 아니에요. 제 미래의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죠. 한 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 아내는 제가 성장하는데에 아주 큰 힘이 됐어요. 아, 이건 정말 부끄러운 얘긴데, 말하기가 망설여지네요. 뭐, 솔직하게 알려드린다고 했으니 공개할게요. 웃긴 이야기이기도 하고ㅋㅋ



트윗으로 시작됐어요. 전 당시 팔로워가 몇 천명 밖에 없었죠. 베르더 브레멘 임대생이었으니까요. 전 경기에 대해 트윗을 했는데, 아름다운 여자가 좋아요를 눌렀더군요. 저는 당시에 싱글이었고 제 친구에게 그 사진을 보고 있는 걸 딱 걸려버렸죠. 친구가 “착해보이는 여잔데, 아니야? 메세지 보내봐”


전 그래서 말했죠 “아니 아니 안 돼, 제발. 사람들은 날 안 좋아 한단 말이야. 날 이해 못 한다구. 답장도 안 할 걸?”


그랬더니 친구가 제 폰을 가로채더니 메세지를 치는 겁니다. 그리고 절 보며 “봐, 전송 눌러도 될까?”


저는 아마 손발이 오그라들어 바닥에 동동 구르고 있었을 거에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알았어, 전송해” 라고 했죠. 


그게 전부입니다. 전 꽤 이름있는 축구선수였는데 제 미래 아내가 될 여자에게 메세지 보낼 용기도 없었던 거죠! 제가 어떻게 감히!



하지만 감사하게도, 친구가 메세지를 보내줬고 아내는 답장을 했어요. 서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몇 달을 보냈어요.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되면 제 소심함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죠. 그녀는 정말 많은 방향으로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솔직히, 아내 없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축구선수의 아내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어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 아내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저를 위해 19세의 나이로 이곳저곳으로 이사해야했고, 제 꿈을 위해서였죠. 우린 이 여정을 함께 걷고 있는 겁니다. 아내를 매우 존경하고 있어요. 그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로 놀라워요. 


우린 2015년 이적시장 당시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맨시티, PSG, 그리고 뮌헨 모두 저에게 관심이 있었죠. 정말 스트레스 받았던 시기에요. 전 막 가족을 시작한 단계였지만 어디서 살게될지 조차도 몰랐으니까요. 


개인적으론, 시티에 가고 싶었어요. 비니 콤파니가 계속 문자를 보내면서 시티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며 제가 시티를 아주 사랑하게 될 거라 해줬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볼프스부르크에 예의를 지키고 싶었어요. 전 정말로 그 클럽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래서 전 걍 입 닫고 가만히 있었죠. 쉬운 방법입니다!


매일매일, 정말로 3주 동안, 제 에이전트는 “이적할 것 같아. 아 잠깐만, 안 될 것 같다. 어, 될 것 같다가 안 될 것 같네”를 반복했어요. 


이 스트레스는 아내에게 정말 좋지 않았어요. 어느 아침 일어나더니, 정말 아파했어요. 어쩔 줄 몰랐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겁을 먹었죠. 


그러더니 갑자기 고통을 호소했어요. 피까지 흘렀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채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우린 아이가 유산될까 걱정하고 있었죠. 제 인생에서 가장 안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것과 비교가 안 돼요. 병원에 앉아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무력감..이 일이 생기기 바로 전 까지만 해도 이적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버린 거죠. 


감사하게도 결국엔 아내도, 아기도 괜찮았어요. 

제 인생에 아들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못 하겠네요. 축구를 하며 느낀 건, 제 아내와 아이들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게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중 세 번째 순간입니다. 왜냐면 저에게 축구가 죽고살고 할 만큼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우쳐줬으니까요. 어쩌면 제 가 23세가 될 때까진 축구가 절 갉아먹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 아들을 만나고 나선 혼자 축구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가정을 시작하고, 시티로 이적하고 나서 모든 게 잘 풀리기 시작했어요. 

특히 펩이 도착한 두 번째 시즌 부터는 더더욱. 



펩과 저는 비슷한 마음자세를 갖고 있어요. 솔직히, 그가 저보다도 축구에 관해서 미쳐있는 것 같아요. 그는 항상 엄청나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죠. 선수들이 아무리 많은 부담감을 느끼든, 펩은 그 두 배는 받을 겁니다. 왜냐면 그가 원하는 건 단지 승리가 아닌, 완벽이니까요. 


그와 함께한 첫 훈련에서 펩은 절 앉혀놓고 이런 말을 했어요. “케빈, 잘 들어. 넌 -손쉽게- 세계 톱5위권의 선수가 될 수 있어. 식은 죽 먹기야”



전 충격을 받았죠. 하지만 펩이 그정도의 확신을 갖고 말 하니까 제 정신 자체를 바꿔놧어요. 천재적인 방법이죠. 왜냐면 이제 전 그가 옳았음을 증명해야하니까요.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축구는 공포와 부정적인 것들 뿐입니다. 하지만 펩과 함께라면, 극도의 긍정성을 갖게 되죠. 그는 실현하기 거의 불가능한 목표들을 상정해놓습니다. 그는 전술천재이기도 하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지 못 하는 건, 그가 완벽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채찍질하는가입니다. 

이번시즌은 저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부상들과 놓쳐버린 경기들을 생각하면 정말 어려운 시즌이에요, 정신적으로.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 것 만큼 저에게 고통스러운 건 없습니다. 고문 그 이상이에요. 정말 싫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저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요. 저희는 거의 7년을 함께했는데 그녀는 제가 운 걸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장례식에서 조차도 전 울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 시즌 초반에 풀럼을 상대로 무릎 부상을 당했을 때 인대부상이라는 검진을 받았어요. 의사들은 제가 한동안 깁스를 해야한다고 했죠. 이런 건 항상 고통스럽습니다. 혼자서는 속옷도 못 입었어요. 타이밍도 정말 최악이었죠. 왜냐면 그 당시 아내는 둘 째 아들을 출산한지 이틀밖에 안 됐거든요. 


사실, 그 때 아내는 병원에서 집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죠. 그 때 우린 페이스타임으로 얘기를 했어요. 


“아기는 어때? 다 괜찮아?”



“다 괜찮아. 너 울어?”


제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나 봅니다



“나쁜 소식이 있어. 또 무릎 부상이야. 한동안 깁스를 하고 있어야 해. 그러니 이제 너가 돌봐야할 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지”


그리고 갑자기 다음 순간, 정말 엉엉 울음이 터졌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이게 둘째가 태어나서인지, 부상 때문에 놓치게 된 경기들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멍청한 전면카메라를 보며 영상통화를 하고 있을 때 전 완전 무방비 상태로 꺼이꺼이 울었어요ㅋㅋ


제 아내는 믿을 수가 없었죠


“우리 결혼식 때에도 안 울고, 애들 태어날 때도 안 울고! 둘 째는 말 그대로 어제 태어났다고!”

그게 저에 대한 설명이 되겠네요.

결혼식, 장례식, 아이 출생?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 바위거든요. 


그러나 저에게서 축구를 뺏어간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에 시티의 프로젝트는 승리 그 이상입니다. 그건 우리의 플레이 방식, 그리고 철학에 관한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자잘한 디테일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우리가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축구라는 게, 간단하게 한다는 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저에게, 그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이상을 실현하든 못 하든 우리가 타고 있는
좋은 흐름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가 시티에서 가장 최고의 기량일 때, 팀 전체가 하나의 액체처럼 움직일 때...이에 맞는 단어가 뭐였죠? 명상할 때 떠오르는 거요. 


열반. 


정말 저에겐 열반의 경지입니다. 

이런 말을 해놓고 생각해보니 전 정말 특이한 캐릭터가 맞네요. 축구를 통해서만 절 표현하는 거요. 이게 제 스토리입니다. 

제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Thanks for letting me talk.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내용 요약해드릴게요.
1. 스털링은 아주 좋은 사람이야. 미디어에서 하는 말은 전부 개소리임
2. 어린시절 통수친 양육가정 때문에 축구에 미치게 됬음.
3. 각성해서 기량 끌어올려서 첼시 갔더니 무리뉴와 면담하게 됨
4. 무리뉴는 5옵션으로 남길 원했고, 덕배는 떠나길 원해서 결국 떠남.
5. 볼프스 활약으로 시티로 이적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로 아내가 한번 유산 위기에 처할뻔 함.
6. 시티의 프로젝트는 굉장히 만족스럽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나보다 더 축구에 미친 사람임.
7. 시티로 이적해와서 정말 행복하지만 이번시즌 부상때문에 정말 힘들어서 광광 울었음.

 

근데 무리뉴가 실망한 눈치였다는거 보면 무리뉴는 뭐랄까 조금 자극을 줘서 분발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는게 아닐까? 덕배가 클럽의 핵심이나 베테랑이였다먼 5옵션이라는건 꺼지라는거겠지만 아직 어리고 임대를 다녀온 유망주니까...

 

무리뉴 첼시 시절 그 당시 유망주 어린 덕배에게 자극을 주고 분발을 촉구했는데 덕배는 반대로 튕겨져 떠나버린 느낌인듯? 무리뉴식 길들이기에 들어가려고 했던거 같은데 실패 ㅡㅡ 무리뉴는 넌 5옵션이야라고 말하면 덕배가 내가 1옵션이 되겠어라고 말하길 바랬을 수도 ㅋㅋㅋㅋ

 

개멋있다 덕배 팬들에게 조금 친절하게 대해줬으면 이거보다 여론 더 좋아졌을텐데... 실력은 월클이니 파이팅했으면

 

친절에 관해서도 본문에 나와있는데 본인은 정말 낯을 많이 가리는 샤이보이 (부끄럼쟁이) 라 그렇다고 하네요.
아내 처음 만났을때도 아무말도 못했는데 친구 덕분에 이어졌다고 할정도?

 

샤이보이인건 이해하는데 매몰차게 팬들에게 싸인안해줄거임 나 지금 피곤하거든 이런거 볼때 정이 좀 떨어져서... 팬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거였었나?

 

사람 성격을 착하고 나쁘고 양면적으로 볼수 없음 내성적이면서 승부욕도 쩔면서
피곤해서 팬들 사인안해준것도 다 덕배임 
그냥 그 사람

 

펩시티 = 열반의 경지 ㄷㄷ

 

와 책한편 읽었네.. 진짜 멋진 놈이구나

 

손흥민하고 포옹 자주하고 하더만
소농민의 인싸력이 부럽다...

 

이런거 보면 반대로 어린 나이에 뜬금 출전해서 에이스 먹는 경우는 ㄹㅇ걍 타고난 천재들이거나 엄청난 노력파인듯ㅋㅋ 기회가 적어도 항상 경기 출전을 위해 풀핏 상태로 유지한다는 거잖아

 

이쉐끼 안 그래도 극호감인데 이런 사정이 있다는거 알게 되니까 초극호감이 되네 마지막의 thanks for letting me talk가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냐

 

무리뉴가 선수자극할때 하는 패턴이랑 비슷하네 .. 외질도 이런걸로 뭐 있지 않았나 ??

 

렛미톡!

 

넷에서 이런 긴글 읽는일 잘없는데
짧은 인터뷰만으로 덕배랑 집앞에서 술한잔 한거같음
좋은글!

 

양육가정이 뭐야 엄마가있디만 기를수있는여건이안된거였나???

 

집에서 먼 곳에 있는 팀에 가서 지냈고 구단에서 어린 선수들 위해서 양육가정 준비했다고 돼있음

외국 유학보내면 홈스테이하는거랑 같은거ㅇㅇ

 

이렇게까지 축구를 좋아하니까 잘하는구나..

이야 불운한 계기로 삐뚤어진 놈이지만 솔직하네. 인간적인 면모가 보인다.

 

소심한 성격탓에 대중과 마주하기 힘들 수도 있었겠다.
물론 아직까지 거론되는 사인을 거부한 행동 자체를 옹호하고싶진 않지만,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일부 이해가 되기도 함

 

ㄹㅇ 덕배 다큐 인터뷰네

 

우린 아이가 유산될까 걱정하고 있었죠. 제 인생에서 가장 안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것과 비교가 안 돼요. 병원에 앉아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게 없어요. 그 무력감..이 일이 생기기 바로 전 까지만 해도 이적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버린 거죠. 
이 부분 보니까 저번시즌 실바가 갑자기 개인사정으로 빠졌을때 덕배가 골 넣고 실바 등번호 21번 셀레브레이션 했던게 이해된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본인도 상당히 공감되고 걱정 됐을듯

 

즐라탄처럼 승부욕 건드리면 불붙는걸 기대한거같은데 덕배 성격에는 펩의 방식이 더 맞았던듯

무리뉴 스타일이 2000년대에는 잘 먹혔어도 이제는 안먹히는 스타일인거 같음.

 

잔인할정도로 아군에게 태클을 잘 하지

 

출처 : https://www.fmkorea.com/best/1821688101

https://www.theplayerstribune.com/en-us/articles/kevin-de-bruyne-man-city-let-me-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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